가요이야기(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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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작사가 (2) - 조명암, 반야월
불멸의 작사가 (2) - 조명암, 반야월 조명암(1913.1.10~1993.5.8) 본명 조영출(趙靈出). 충남 아산 출생, 작사 활동시 예명으로 조명암, 김운탄,이가실 등 사용(김다인이라는 예명 또한 조명암의 예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함).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시), 같은 해 유행소곡 현상공모에 입선하면서 작사활동 시작. 500여곡의 가요를 작사하여 광복이전 히트곡을 포함하여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사가임. 일제말기 군국가요(친일가요)를 다수 발표하였으며 광복이후에는 좌익활동을 하다 1948년 월북함. 한국전쟁(6.25)중에는 진중가요(북한군가)를 다수 발표하였으며 민족예술극장 총장과 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등을 역임함. 작사가의 월북으로 인해 조명암이 발표한 모든 곡이 금지되자 반야월..
2023.08.20 -
광복, 그리고 해방공간의 노래들-가요114
광복, 그리고 해방공간의 노래들-가요114 글 : 이준희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은 1945년 8월 15일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1948년 8월 15일까지. 일본과 싸워 이긴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와 군정을 펼친 그 3년 동안을 미군정기, 다른 말로 흔히 '해방공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짧은 동안이었지만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그 때, 대중은 어떤 노래를 듣고 또 불렀을까. 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노래와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노래를 희귀한 유성기음반 자료를 통해 다시 들어 본다. 1. 舊 애국가 / 송진혁,합창단 오늘날 널리 부르는 는 안익태가 작곡한 것이지만, 광복 당시에는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구한말부터 불리던 스코틀랜드 민요 곡조를 딴 가 대중에게는 ..
2023.08.20 -
불멸의 작곡가 (2) - 손목인, 박시춘
불멸의 작곡가 (2) - 손목인, 박시춘 광복이전 대중가요의 태동기에서 한국가요를 정립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많은 공헌을끼친 사람들은 단연 작곡가들일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장치들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기에 대중들이음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성기 음반과 더불어 이른바 '천막극장'으로 통하는유랑악극단의 순회공연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각 레코드회사에 소속된 가수와 작곡가 등은 음반과 악극단에서 항상 같이 활동하게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작곡가들도 대중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많았습니다. 지방순회공연시 오늘날과 같이 특정한 한 가수의콘서트가 중심이 되지 않고, 주제를 가진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하는 '악극'이 중심이 되었기에 여러가수가 한 무대에올랐습니다..
2023.08.18 -
불멸의 작곡가 (1) - 이재호, 이봉조
불멸의 작곡가 (1) - 이재호, 이봉조 대중가요에서 그 이름을 빛낸 스타들은 시대를 거슬러 우리의 삶과 함께 합니다. 우리 가요사가 100여년을 헤아리지만 아직까지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스타들이 많습니다. '희망가', '황성옛터' 등은 세상에 나온지 70년이 넘었지만 흘러간 가요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생명입니다. 남인수, 이난영, 김정구, 황금심, 현인 등 이미 세상을 등진 스타들의 이름 또한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가수들의 이름만큼이나 중요하지만 흔히 잘 모르고 지나가는 무대 뒷편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바로 작사, 작곡가들의 이름입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노랫말과 대중들의 정서를 아우르는 곡을 쓰지만 알려진 몇명 정도를 제외하곤 정작 자신들은 한걸음 물러나서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
2023.08.18 -
광복 이후 유성기음반제작사 열전 (4) - 럭키레코드
광복 이후 유성기음반제작사 열전 (4) - 럭키레코드 글 : 이준희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한국 대중가요사를 대표할 만한 히트곡을 단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단연 현인이 부른 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음반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재미를 본, 즉 을 발매한 음반회사가 바로 럭키레코드이다. 앞서 본 오케레코드와 마찬가지로, 럭키레코드 역시 광복 이전에 같은 이름의 음반회사가 있기는 했으나, 그와 직접적인 관련 없이 광복 이후에 새로 설립된 음반회사이다. 럭키레코드의 설립 시점에 대해서는 1946년, 1947년, 1948년 등 다양한 증언이 있지만, 을 비롯한 제1회 신보가 발매된 것은 1949년 4월이었다. 음반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
2023.07.26 -
광복 이후 유성기음반제작사 열전 (2) - 오케레코드
광복 이후 유성기음반제작사 열전 (2) - 오케레코드 글 : 이준희 일제시대 대형 음반회사로는 콜럼비아, 오케, 빅타, 포리돌, 태평 등 다섯 군데가 있어 1943년까지 음반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오케레코드는 5대 음반회사 가운데 가장 늦게 1933년부터 음반을 내기 시작했지만, 음반 발매 종수에서 콜럼비아레코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특히 대중가요 분야에서는 다른 음반회사들을 압도하여, 인기 있는 작가와 가수, 작품 태반이 오케레코드를 통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케레코드의 화려한 활동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오케레코드의 본사인 일본 데이치쿠(帝蓄)레코드가 철수하면서 일단 막을 내렸지만, 오케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 한국 음반산업의 전설적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