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0. 15:36ㆍ가요이야기
광복, 그리고 해방공간의 노래들-가요114
글 : 이준희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은 1945년 8월 15일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1948년 8월 15일까지. 일본과 싸워 이긴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와 군정을 펼친 그 3년 동안을 미군정기, 다른 말로 흔히 '해방공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짧은 동안이었지만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그 때, 대중은 어떤 노래를 듣고 또 불렀을까. 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노래와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노래를 희귀한 유성기음반 자료를 통해 다시 들어 본다.
오늘날 널리 부르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한 것이지만, 광복 당시에는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구한말부터 불리던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곡조를 딴 <애국가>가 대중에게는 더 친숙한 노래였다. 이 <애국가(구곡)>은 바로 그 <올드랭사인> 곡조의 애국가이다. 1947년 8월에 광복 이후 처음으로 국산음반을 제작한 고려레코드에서 음반번호 1번으로 발매한 광복 이후 첫 음반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테너 송진혁과 음악대학합창단이 함께 불렀으며, 작곡가 김성태가 지휘를 맡고 고려레코드 사장이었던 피아니스트 최성두가 반주를 맡았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 리'라는 첫 대목으로 유명한 <조선의 노래>는 원래 1931년에 가사가 발표된 것이었지만, 광복을 맞은 이후 본격적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1947년 8월에 <애국가>가 수록된 음반과 함께 고려레코드에서 음반번호 2번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지만,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이른바 '해방가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가사가 일부 바뀌고 <대한의 노래>로 개제되어 불렸다. <애국가(구곡)>과 마찬가지로 김성태, 최성두, 음악대학합창단이 녹음에 참여했고, 송진혁 대신 김형로가 독창부를 맡았다. 이 음원에는 독창부가 빠져있다. 이은상 작사, 현제명 작곡.
3. 흘러온 남매2 / 이난영,남인수,심연옥,노명애,계수남
1947년 겨울 무렵 고려레코드 음반에 실려 발표된 곡이다. <남남북녀>라는 제목으로도 불린 것으로 보아, 1947년 9월에 KPK악단에서 공연한 <남남북녀>의 주제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KPK악단을 이끌었던 김해송이 작사와 작곡을 다 맡아 했고, KPK악단 무대에서 활동하던 계수남, 남인수, 노명애, 심연옥, 이난영이 대사와 노래에 참여했다. 반주는 물론 KPK악단.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볼 때 <흘러온 남매>는 광복 이후 최초의 대중가요 음반이 된다. 분단에 대한 통탄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장중하게 극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4. 희망 삼천리 / 남인수
광복을 맞은 기쁨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희망이 담긴 대표적인 해방공간의 대중가요. 음반번호로 보아 <흘러온 남매>보다 나중에 발표되기는 했으나, 신문 광고로 보면 1948년 6월 이전에 나온 것은 분명하다. 해방공간에 가장 어울릴 만한 대중가요이기는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함께 발표된 <가거라 삼팔선>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한다. 김득봉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해방공간 최고의 인기곡이자 걸작. 광복의 기쁨보다 오히려 더 절박했던 분단의 고통을 표현하여 당시 대중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했다. 일찍이 <애수의 소야곡> 트리오로 이름을 날린 이부풍, 박시춘, 남인수가 다시금 그 진가를 확인한 작품이다. 6.25 이후에는 전반적인 반공이념 강화에 따라 1절 가사 일부가 바뀌고 새로 2절이 추가되는 변모를 겪기도 했다. <희망 삼천리>와 같은 음반으로 고려레코드에서 발매.
광복 이전 대중가요계를 선도했던 오케레코드 상표를 그대로 부활시킨 새로운 오케레코드의 제1호작. 1948년 5월에 8.15 광복을 기념하는 의미가 담긴 음반번호 8151로 발매되었다. 이가실 작사, 김해송 작곡에 장세정이 노래를 했는데, 이가실은 당대 최고의 작사가 조명암의 필명이다. 전체적으로 광복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유의 종이 울어 8.15는 왔건만/ 독립의 종소리는 언제 우느냐'라는 대목에는 미군정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보인다. 1949년 김구 암살 당시 현장에 있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노래로도 유명하다. 김해송의 뛰어난 편곡 솜씨가 잘 표현된 작품.
7. 추억의 황성 / 김옥엽,송숙방,옥두옥,이계운,장정애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제작한 KBC레코드를 통해 1948년 8월 이전에 발매된 작품이다. 심연옥의 노래로 유명해진 <아내의 노래>도 원래는 KBC레코드를 통해 김백희의 노래로 먼저 발표된 바 있다. 김상화 작사, 이봉룡 작곡에 가수는 김옥엽, 송숙방, 옥두옥, 이계운, 장정애 등인데, 이들은 모두 방송국 전속가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달밤>과 궤를 같이하는 회고적 분위기의 곡이다.
8. 사랑 / 태성호
<사랑>은 원래 광복 이전인 1942년에 태평레코드에서 음반이 발매되었으나,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광복 이후 서울레코드 음반으로 발매된 것이다. 새로 발매되었다고는 하나 녹음을 새로 한 것은 아니며, 광복 이전 음반을 그대로 복제해 찍어낸 것이다. 광복 직후 새로운 대중가요 생산을 위한 기반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처럼 광복 이전 인기곡을 복제해 조악하게 만든 음반이 제법 많이 나왔고, 그러한 가운데 <선창>, <찔레꽃> 등은 오히려 새롭게 인기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을 소재로 한 곡으로,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태성호 노래
1949년 6월에 발매되었으므로 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역동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표현한 노래이다. 가수 남인수가 설립한 아세아레코드에서 처음 나왔고, 1953년에는 오리엔트레코드에서 다시 나오기도 했다. 해방공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가수였던 장세정의 특징적인 목소리와 창법을 잘 느낄 수 있는 노래로, 손로원 작사, 이봉룡 작곡. 간주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국적인 멜로디는 <고향만리> 같은 노래를 연상케 한다.
'가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행가 시대(18) - 1939년, 레코드 가수 인물론 (0) | 2023.08.20 |
---|---|
불멸의 작사가 (2) - 조명암, 반야월 (1) | 2023.08.20 |
불멸의 작곡가 (2) - 손목인, 박시춘 (0) | 2023.08.18 |
불멸의 작곡가 (1) - 이재호, 이봉조 (0) | 2023.08.18 |
광복 이후 유성기음반제작사 열전 (4) - 럭키레코드 (0) | 2023.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