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춘에 관하여

2022. 10. 6. 01:55가요이야기

박시춘에 관하여

                                            2006-06-21 23:24:39     오태환

         생애 삼천여곡을 작곡한 가요계의 대부! 그가 빠지면 우리가요 100년사의 전반부는 백지와 다름없을 많 큼 그의 업적은 위대하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꼬집힌 풋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수많은 주옥같은 명곡을 만들어 힛트 시켯 으며 해방 후 현인으로 하여금 신라의 달밤,/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 만리,/ 굿 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라/ 등을 부르게 하였으며 최고의 가수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이인권, 김정구, 장세정, 현인, 박경원,백설희, 이미자, 나훈아에 이르기까지 그를 그치지 않는 스타는 없었다.

 

전선야곡,/ 고향초,/ 삼다도 소식,/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돌지 않는 풍차,/ 등 샐수없이 많은 곡을 작곡한 박시춘 은 밀양출신 월견초 와 더불어 남천강 사랑,/ 밀양 아가씨/ 등을 작곡 하였으며 오향 영화사를 만들어 육체의길, 가는 봄 오는 봄,/ 딸 칠형제 / 등 우리나라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 1971년 김부자의 일자상서를 마지막 으로 그가 쌓아온 금자탑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박시춘 선생이 남긴 찬란한 명곡들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박을 견디어 살아가게 한 원동력과 위로의 노래가 되었으며 희망이 없는 암울한 조국에 희망을 갖게 하고, 메마른 가슴은 눈물로 적시우고 하소연 할 수 없는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당시의 유행가 황성옛터,/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등은 박시춘 선생의 서귀포 칠십리,/ 집 없는 천사/ 와 더불어 나라 잃은 설움을 노래하였고 일제의 검열의 요주 의 인물이 되었다. 더구나 박시춘 선생과 살아온 세대에게는 박시춘은 감동어린 노래의 화신이었고 마음의 고향 이었다.

 

불운 했던 일제36년!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일제시대의 우리 노래가 일본 엔카 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패배의식의 노래라면 현재의 랩과 댄스음악!, 지식층의 클래식은 과연 우리 음악인가?

 

맺힌 것을 풀어주는 음악!, 슬플 때 울고 나면 시원한 음악!, 이별이 그리워 사랑이 되고, 사랑이 그리워 한이 되는, 한은 슬프나 즐겁고 어두우나 밝았으며 절망스러우면서도 희망 을 주는 우리민족의 한을 풀어주던 노래 ! 당시 이들의 노래는 일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민족의 속을 풀어주는 신호이며 약이었다.

 

박시춘 최고의 작곡가! 조명암 최고의 작사가 ! 최고의 가수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박향림, 등이 친일을 찬양하는 노랫말을 만들고 오선지를 채우며 노래했다.

 

물론 일제를 찬양하고 친일의 노래를 만든 것은 잘못 되었으며 친일을 단죄하지 않으면 역사의 대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것도 사실 이지만, 당시 시대상황과 한 맺힌 우리의 역사를 토대로 한 가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의론 자 들이 친일이니 매국 이니 운운하며 지금의 잣대로 단죄함은 너무 위험한 발상이며 흑백의 논리로 치우침은 더욱 안 된다.

 

친일가요!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안해,/ 강압에 의해 만든 노래는 일제말 일본이 최후의 발작을 할 때 몇 곡 불려 졌으며 일제가 볼 때 최고의 가치가 있는 그들을 어찌 그냥 두었겠는가? 그들은 정책을 따르면서 목숨의 위협과 함께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선지를 채웠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대다수의 곡들로 망국의 한을 노래했고 노래로서 서로 서로를 위로 하며 다가 올 해방을 기대했다. 또 하나의 친일을 찬양하는 노래라 논란이 되던 박시춘 남인수의 감격시대! 는 해방과 함께 일본의 패망을 기쁘 하고 해방된 조국을 찬양하며 해방과 함께 더 많이 불려졌다.

 

마치 해방을 예견한 노래처럼......

 

일제 그의 모두가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을 하고 자의든 타의든 징집으로, 징용으로 , 정신대로 ,일제에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일조한 사람들 을 모두 친일 이라 할 수 없지 않는가 ? 모두 슬픈 역사에 희생된 양 이라할까?....

 

그리고 지금현재 명분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강대국의 힘센 발길에 희생되는 불상한 민족들! 강대국의 외압으로 국익을 위하여 우리 군을 파견해야 되는 현실과 뭐가 다를까? 그들도 우리의 노래자산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 이었으리라.

 

물론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일제와 싸우며 자기 소신을 꿋꿋하게 관철해 온 애국선열도 많지만 지금 친일이라 주장하며 단죄 하고자 하는 분들이 그때의 상황이라면 강자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견딜 자신이 있을까?

 

그들은 살아남았고 해방 후 박시춘 선생은 신라의 달밤,/ 가거라 삼팔선/ 을 작곡 하였으며 또 하나의 비극인 6.25가 터지자 군예 대으로 입대하여 제1훈련소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군가와 전우야 잘 자라,/ 전선야곡,/ 임 계신전선/ 등을 작곡하여 우리 군의 사기를 높이 고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싸웠으며, 굿 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최고의 명곡을 탄생 시켰다.

 

주옥 같이 아름다운 노랫말은 구구절절한 한편의 시였고 ,시대를 반영한 기막힌 조화로 조국의 아픔을 노래한 가요인들을 결코 우리는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박시춘이 밀양을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고 말하는 밀양 사람들! 이곳 밀양에서 박시춘 선생만한 예술인이 몇 이나 될까?

 

박시춘 선생은 밀양사람 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애인 이었고 남북한 통틀어 최고의 거물 예술인이다. 박시춘 선생은 밀양의 자랑 이자 영광이다. 그리고 거짓이 아니라 진실 된 문화 예술의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예술인 들은 더욱 정진하고 박시춘 가요제 또한 세계적 가요제로 승화 시켜 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