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마음에 품고 세계를 감동시킨다.”

2023. 8. 17. 16:29언론

 “한국을 마음에 품고 세계를 감동시킨다.”

가장 향토적·한국적인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한국의 멋’ 오태환 화백

 

한국의 서양화는 1910년 도입 이래 재료에 따라 유화, 수채화, 판화 등으로 나뉘며 표현 형태에 따라 구상화, 비구상화로 나뉜다. 이는 한국의 그림, 즉 한국화와는 대별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용어로서 한국화는 주로 직관적이며 되풀이하지 않고 한 번의 터치로 그려지는 데 반해, 서양화는 논리적이며 화면에 덧바르거나 깎는 식으로 층을 구성한다. 서양화가 일반 유화를 통해 유럽식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해도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적 표현이 비춰지며 오늘날 구상과 비구상, 추상화 같은 작품을 보면 국적 없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나름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평할 순 없지만 한국 미술 본연의 색채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국적 없는 작품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 이때,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오태환 화백이 ‘한국의 멋’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당당히 한국전을 마치고 국제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지향한다.”고 자신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우리 민족의 정신과 흔적을 이어받아...

195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오태환 화백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모친이 사준 만화책을 보고  혼자 글을 깨우친 그는, 만화책 표지에 나오는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며 미술의 꿈을 키웠다. 그 후 줄곧 미술에 전념해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특기 장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진학 대신 미술과 관련된 도자기 회사, [밀양 도자기/ 청주 한국도자기]에서 그림과 관련된 전문 디자이너로  탁월한 솜씨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1990년 본격적인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서  미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멋을 주제로 한 그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늘 날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적 풍조에 오 화백의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영감과 민족의 정신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 능력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진정한 예술인으로 부족함이 없다.

 

 

한국 역사의 향기, 옛 조상의 흔적을 세계로

일반 사람들은 오 화백이 절실한 불교신자인가 궁금해 한다. 그의 작품 중에는 반가사유상, 석불, 그리고 불교에 대한 여러 가지 탱화가 접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절에도 가고 여러 스님들과도 교우를 쌓고 있지만 절실한 불교신자이기 보다는 한국의 옛 문화 자체가 불교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왔기에, 오래 된 것, 고전적인 것을 찾다 보니 결국 불교의 금동불 석불 등의  불교적 작품을 그리게 된 것이다.

 

오태환 화백은 학창 시절부터, 한국적인 고전유물 등 옛날 물건을 소제로하여 표현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고등학교 시절 고추 광주리, 멍석, 토기 등 고전적인 것을 즐겨 그리던 것이 지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는 40대에 접어들며  수채화부터 유화, 풍경, 정물, 인물화 그래픽 디자인까지 모든 장르의 그림을 그려보고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적 특색을 가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다른 작가들처럼 붓으로 그린다기 보다는,  칠 하는 식. 바르는 식, 찍는 식으로] 토기 고분이면 흙,  금불상 이면 금, 그림 그리고자 하는 사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물체 특유의 질감을 나타낼 수 있는 기법을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붓을 선택할 때에도 털이 억센 것, 부드러운 것을 그리고자 하는 물상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고,  물감도 [황토,/ 수채화물감/, 유화물감/, 아크릴물감,/ 분채,/ 석채,l 산화철,/ 금분] 다양한 재료를 써왔습니다.”라고 밝힌다. 물체의 질감이 재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오 화백의 작품에 대한 애정, 섬세함과 함께 자연 그대로의 원형에 충실하고자 다양한 변화와 재료, 방법을 추구하는 그만의 정교한 기법은 독특한 그림의 특색을 나타낸다.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밀양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 어느 곳에 가면 어떤 색깔의 흙이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황토색, 붉은색, 검은색, 회색을 내는 이런 흙들을 채집 해 물감으로 사용하고 자연에서 찾을 수 없는 화려한 색깔은  분채, 석채 아크릴 물감을 사 쓰기도 하면서  또 거기에 아교나 본드 등으로 오브제 작업을 하기도합니다.”라는 오 화백의 말처럼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심을 형성하는 색채는 바로 황토의 빛깔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고전적인 황토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는 한국의 고전적 미와 한국의 멋으로 표현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과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오 화백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한국의 멋’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이은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낙선에도 굴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2001년 첫 입선을 시작으로 2002년과 2003년에 연이어 특선을 달성하여 노력하는 그의 집념이 예술계에 독보적인 자기만의  영역으로 키워 나갔다. 유화, 수채화, 풍경화, 정물을 비롯해 인물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면서 이러한 여러 장르의 작품이 기초가 된 바탕 위에 옛 조상의 정신과 흔적을 소재로 한 ‘한국의 멋-정기’가 입선, 특선을 거머지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라는 그의 예술철학을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키워 나갔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사랑하고 작게는 밀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에 관한 그림, 밀양에 관한 그림을 그려왔고, 앞으로도 그릴 것입니다.”라고 밝히는 그의 밀양에 대한 관심은 영정 제작 활동으로 이어졌다. 박위, 허준, 아랑, 사명대사 손명대 등과 박시춘에 이르기까지 밀양지역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은 어김없이 오 화백의 터치를 거쳐 작품화 되었다. 한 지역에서 지역성을 충실히 반영하고 소화시키는 듬직한 예술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밀양 지역민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가 생각해 본다.

 

오 화백은 우리민족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표현 한 ‘한국의 멋’을 주제로,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에서 11회에 걸친 국내 작품전을 마치고, 올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11월 국제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내년 4월 프랑스의 초청으로 한국의 멋-프랑스 파리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후 4개국[./독일,/ 러시아,/ 미국,/중국의북경,/]을 순회하며 우리 민족의 얼과 슬기, 정신이 스민 역사 속의 고전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을 세계에 알릴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고 있다.

 

동방화랑 한가득 향수를 불러 일으켜

고전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던 오태환 화백의 한국사랑은 그림으로 그치지 않았다. 중2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황제 남인수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가요에 있어서도 그의 예술성은 두각을 나타내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남인수의 고운 노래 소리는 크리스마스카드를 팔아 전축과 엘피판을 살 정도로 그에게는 특별했다. 그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한 옛 노래가 담긴 엘피판과 각종 축음기와 진공관 장전축은 동방화랑에 자리 잡아 보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각종 희귀음반 뿐만 아니라 사천여장의 음반과 200여장의 남인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그는 전국에서 남인수의 엘피 음반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그의 인생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열정으로 지난 2006년 7월에는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또한 오 화백은 9여년의 기간을 밀양예총 사무국장의 자리에서 자신의 고장 밀양과 그를 신뢰하는 밀양인들을 위해  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예전에는 봉사단체나 여러 모임 활동으로 우리 고장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올해 50의 나이가 되니 이제는 한 10년 정도 그림에 묻혀 그림에만 푹 빠져 살아보고 싶습니다.”라고 밝히며, 고향 밀양,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밀양 주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미술에 있어 음악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정서를 펼치는 오 화백이야 말로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현대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7 , 11  취재/  대한뉴스 송대원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