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노래에 빠진 화가 옛 음반 수집가 오태환 씨
2022. 10. 3. 22:21ㆍ언론
흘러간 노래에 빠진 화가 옛 음반 수집가 오태환 씨
경남신문 GOOD-LIFE 2003.7.3
40대 중반의 한 남자. 그는 노래방에만 가면 외롭다.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 No! 그럼 음치? No! 혹 박자치? No!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그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요즘 노래를 몰라서`다. 잘 나가는 친구들은 신세대 노래까지 거침없이 부르건만 그의 애창곡은 늘 60년대 이전 우리 가요에 머문다. 옛 음반 수집 마니아 오태환 화백(46·밀양시 가곡동·동방화랑). 그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총 4천여장. SP판 300여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LP판이다. 1960년에 출시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기준으로 그 이전 노래가 실린 음반들을 주로 수집한다. 일제시대와 6·25 전후, 한국가요 100년사 초창기 노래들은 모두 그의 사냥감인 셈이다. 30년 세월 듣고 부르고 모은 노래가 이러하니 노래방 왕따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음반과 인연이 맺어진 건 중2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수의 소야곡`을 듣곤 `가요황제` 남인수의 개성있는 목소리에 매료돼 버렸죠. 그때부터 한장 두장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음반 재킷에 새겨진 남인수 선생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뜁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열성팬답게 LP판으로 나온 남인수 음반은 모조리(200여장) 소장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남인수 노래가 좋아 모으기 시작한 음반들. 나중엔 자연스레 동시대 가수들의 음반에까지 손길이 미쳤다. 박시춘 작곡집 40여점을 비롯해 고복수 이난영 황금심 고운봉 백난아 장세정 진방남 등 한국가요사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의 음반은 이미 그의 손에 들어있다. 옛 노래책 뿐 아니라 고향 밀양과 관련된 가요도 따로 수집했다. 서양화가라는 어엿한 본업이 있는 그가 음반수집 마니아가 되기까지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시간만 나면 동네 고물상에서부터 부산 진시장, 대구 칠성시장, 서울 회현 지하상가, 청계천 황악동 등 전국 중고 음반시장을 헤매고 다녔다. 음반상태나 음질이 깨끗한 건 탐이 났다. 같은 LP판이라도 재킷 디자인이 다르면 무조건 수집했다. 수록곡이 같아도 레코드 회사가 다르면 사들였다. 희귀음반도 수십장. 재일교포를 통해 어렵게 구한 OK-태평 레코드사 음반은 그가 특히 아끼는 판이다. 취미삼아 시작한 외도가 이제 딴살림을 차려도 될 정도가 됐으니 음반에 대한 그의 애착이 쉬 짐작된다. 음악과 미술. 그는 이 두 살림을 맛있게 요리할 줄 안다. 옛 것을 소재로 한 그림이 유독 많은 건 옛 가요를 사랑하는 그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림을 팔아 음반을 수집하고 진공관 전축이나 축음기를 장만하기도 했다. 본업과 취미가 공생하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불이 나면 무얼 먼저 가지고 나올 거냐는 짓궂은 질문.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작 정도를 예상했는데 `판`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지만 이 보물들은 다시 구할 수 없잖아요.” 명쾌한 그의 설명이다. 예나 지금이나 오화백의 주머니는 늘 가볍다. 술 담배는 입에도 안 댄다는데 왜일까? 예술가는 원래 가난해서? “용돈이 생기는 족족 판 수집에 털어넣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요. 맘에 둔 판이 있으면 눈에 아른거려 잠이 와야 말이죠. 한번은 애들 학교 육성회비 낼 돈을 몰래 쓴 적도 있어요.” 그의 지칠줄 모르는 극성엔 부인도 혀를 내두른다. 가족들 길거리에 멀거니 세워놓고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쌓인 먼지에 손이 까맣게 되도록 중고음반시장을 뒤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가족들의 항의(?)에 기저귀 찬 늦둥이 세원이(7)만 업고 혼자 서울걸음 한 적도 있다. “아내한텐 늘 미안하고 고맙죠. 넉넉지 않은 돈 쪼개 쓰면서도 제 고집 이해하고 끝까지 따라주는 듬직한 반쪽입니다.” 고지식한 오화백 컴맹탈출 3년째. 요즘엔 인터넷 동호회 뿐 아니라 남인수 팬클럽 회원 활동도 열심이다. “처음엔 그냥 구경만 하고 아이들 시켜 가끔 글 올리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제 방(www. oldsong-3050.pe.kr 음반갤러리)도 생겼어요. 최근엔 디지털카메라도 구입했어요. 재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소장음반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죠."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미세한 쇠바늘 끝에서 읽히는 구성진 가락.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작업실엔 옛 노래가 흐른다. 용돈 줘 가며 꼬드긴 공에 세정이(중1) 세욱이(초6)가 그의 애창곡들을 곧잘 따라 부르자 오화백의 입이 귀에 걸린다. 마지막 꿈이 있다면 작업실과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천장의 음반들을 모아 제대로 된 전시실을 꾸미는 것. 30년 정성이 결실을 보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킁킁` 음반 사냥에 나선다. 글=강지현기자 can@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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