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6. 23:49ㆍ그림이야기
슬픈 사랑의 이야기-신라천년의 미소
슬픈 사랑 이야기
글쓴이 js4678 날짜 2006/04/03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는 우리에게 사랑의 참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지름 14㎝ 이 수막새 기와는 경주시 탑정동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라의 미소라고 이름 지어진 것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눈, 코, 입 등이 실물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는 은근하고 해맑은 미소를 머금어 첫눈에 친근감으로 와 닿는데, 약간 위로 올라간 입술과 아래로 내려간 눈꺼풀이 이루는 조화는 인위적으로는 지을 수 없는 것으로 가히 일품이다.
오만함이나 도도함 없이, 그렇다고 겸손마저 없는 자연스런 미소로,눈가에 약간 주름을 잡으며 입언저리 양끝을 살짝 올리며 만든 도톰한 볼은 너무나 정겨운 신라여인네의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말을 건네며 살아 움직일 듯하다. 이인면 기와를 통하여 신라여인들의 애틋한 마음과 인간미 가득 풍기는 신라문화의 특징을 배운다. 그것은 자신을 온전히 떠나 오직 상대방을 위해 가슴가득 웃는 모습과 개방된 사랑의 방식이다.
그 수막새의 주인공은 경주지방에서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영묘사와 관련된 참으로 기믹힌 사랑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선덕여왕의 분신이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신라 제 26대 진평대왕은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의 장녀인 덕만 공주를 새 왕으로 추대하니,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제27대 선덕여왕이다.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용모가 아름다워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과 찬사를 받으면서 분황사와 첨성대를 건립하고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초빙하여 호국의 탑인 황룡사 9층탑을 조성했다.
그리고 김춘추와 김유신 등 쟁쟁한 사내들을 등용하여 국력을 신장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당태종으로부터는 꽃이 아름답긴 하지만 향기가 없어 벌, 나비가 찾아 들지 않는다는 업신과 줄기찬 침입에도 아랑곳 않고 예지력과 자비심 그리고 불교의 힘을 빌어 나라를 꿋꿋하게 지켰다.
나중에는 후사가 없이 죽으면서 사촌 여동생에게 왕(진덕여왕)의 자리를 물려주고는 도리천에 묻혔다.
살아생전 그녀에 대한 사랑의 로맨스가 서라벌에 널리 퍼졌으니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얼마나 녹였을까?
여왕님의 사랑이야기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고 가슴이 뛴다.
때는 선덕여왕 재위 9년, 지귀(志鬼)라는 젊은 사내가 있었으니 그는 서라벌 외곽 활리역의 역졸 출신으로 서라벌에 왔다가 지나가는 선덕여왕을 보고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사모하는 마음이 들었다.
먼발치로 한번 본 여인을 잊을 수 없어 혼자 속마음을 태우며 사모하는 마음이 사랑의 병이되어 미쳐 버리고 만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소원은 여왕님을 한번 만나 보는 일념으로 서라벌 거리를 헤맨지 몇 년째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모월 모시에 여왕님이 왕궁을 떠나 영묘사로 불공을 드리려 간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날을 기다려 여왕의 행차에 길을 막고 나섰다.
신하들의 제지와 소란으로 가마는 멈췄고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여왕은 불공을 마치고 난 뒤에 한번 만나주기로 약속했다.
그 말을 들은 지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뛸 듯이 기뻤다 기다린 지가 몇 시간이 지나고 일찌감치 탑 밑에서 기다리다 지쳐 그만 잠이 들어 여왕님과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며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불공을 마치고 지나다가 여왕은 그를 보게 되었다.
탑 모서리에 기대어 잠이든 모습은 다 헤진 누더기 옷에 헝클어진 머리와 얼굴몰골은 많이 상했지만 알듯 말듯 한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덮어주며 끼고 있던 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에 얹어주었다.
지귀가 깨어보니 짙은 여인의 화장냄새가 풍겨나는 비단옷과 팔찌만이 가슴위에 빛나고 있었다.
아! 지귀는 더욱 연모의 정이 넘쳐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여왕님이 남기고 간 사랑의 증표보다 만날 수 있던 기회를 놓쳐 버린데 대한 회한과 사모하는 마음이 합해져서 불씨가 되어 온몸이 불덩이로 변했다.
불은 탑을 에워싸고 절을 태웠다. 영묘사는 흔적 없이 사리지고 뒷날 지귀는 신라를 지키는 화신(부적)이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설화이냐?
애달픈 역인의 신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몸부림. 그러나 더욱 애달픈 것은 자애롭고 총혜롭던 여인의 가슴이었는지 모른다.
만인의 어버이요, 사랑의 대상이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숙명적인 연정이 불로 변하고 그 불이 수막새 기와로 변해 그 사랑의 미소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정주님이 선덕과 지귀의 사랑이야기에 반하여 읊은 시가 있어 여기에 옮겨보면
햇볕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해야지--
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
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
한 낮잠 잘 무시고
그대 좋은 낮잠의 상으로
나올 때 내 금팔찌나 한 짝
그대 자는 가슴위에 벗어서 얹어놓고
그리곤 그대 깨어나거든
시원한 바나나 하나
우리 둘 사이에 두어야지.
--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하지
햇볕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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