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 떠도는 꿈과 눈물의 무대-이준희

2023. 8. 20. 16:50가요이야기

'유랑극단', 떠도는 꿈과 눈물의 무대-이준희

가수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지만, 화려한 각광 아래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허름한 지방 가설극장만을 전전하는 무명 연예인들도 있는 법이다. 매체의 발달과 보급이 미진했던 광복 이전 시대에는 이른바 유랑극단이 바로 이러한 무명 연예인들의 주요 활동공간이었다.

 

일찍이 1910년대부터 일본 신파극의 영향을 받은 신파극단이 생겨나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아직 연극을 위주로 하고 있었기에 요사이 흔히 생각하는 유랑극단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다소 엉성한 신파비극에 코미디, 노래, 무용, 곡예, 마술 등 잡다한 내용으로 구색을 갖춘 유랑극단의 공연 형식은 아무래도

 

1930년대 후반에 들어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33년 무렵부터 각 음반회사들이 전속가수들로 구성해 순회공연을 하던 연주단이 이후 점차 연극과 기타 내용을 흡수하면서 악극단으로 발전해 갔는데, 오케레코드에서 운영하던 조선악극단은 그렇게 조직된 대표적인 단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 악극단의 공연 형식을 모방해 영세한 규모로 운영된 것이 바로 유랑극단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고달픈 애환과 소박한 낭만이 어려 있는 유랑극단의 무명 연예인들에 관한 유행가는, 고복수가 데뷔곡으로 부른 '이원애곡'처럼 1930년대 전반에 나온 것들도 있지만, 대표적인 작품들은 주로 1930년대 말에 발표된 경우가 많다. 특히, 1939년부터 1940년까지 태평레코드에서 나온 일련의 곡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다.

 

' 유랑극단 '  광고

한 많은 군악 소리 우리들은 흐른다

쓸쓸한 가설극장 울고 때는 화톳불

낯 설은 타국 땅에 뻐꾹새도 울기 전

가리라 지향없이 가리라 가리라

 

유랑극단 백년설

 

19391월 신보로 발표된 '유랑극단'은 새롭게 출발한 태평레코드가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을 알리는 작품인 동시에, 신인가수 백년설의 성공적인 데뷔곡이었다. 백년설이 1절 가사를 직접 지었다고 하는 '유랑극단'은 당초 그다지 성공할 것이라고는 기대되지 않았지만, 독특한 작품 분위기와 특색 있는 백년설의 창법으로 인해 뜻밖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후 태평에서는 '유랑극단'의 후속작으로 '2 유랑극단''3 유랑극단'을 내놓기도 했다.

 

지나는 거리 거리 플룻 소리가 슬프다

집 없이 흘러 흘러 찾아온 곳 어데냐

모인 건 한 가족 같건만 헤어져 갈 그 운명

극단아 유랑극단 가엾은 극단아

 

3유랑극단 백년설

 

첫 번째 '유랑극단'과 마찬가지로 백년설이 부른 '3 유랑극단', 앞서 채규엽이 불렀으나 전편에 비해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한 '2 유랑극단'과는 달리 '유랑극단'에 버금가는 백년설의 대표작이 되었다. '유랑극단' 세 편은 작사자는 모두 달랐지만 작곡은 모두 전기현 한 사람이 맡아, 일관된 시리즈로서 면모를 갖춘 특징이 있다. 앞서 '타향'에 이어 '2 타향'이 나온 예는 이미 살펴본 바 있지만, 세 번째까지 나온 '유랑극단'의 경우는 전무후무한 것으로 보인다.

 

'유랑극단' 시리즈 외에 박향림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막간아가씨'도 이 무렵 태평에서 발매되었는데, 유랑극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막간가수의 생활이 박향림 특유의 화려한 목소리로 잘 표현되고 있다.

 

울어라 아코죤아 품바품바 울어라

미치는 라이트 속에 몸부림치는 꾀꼬리다

손뼉을 쳐라 손뼉을 쳐 목소리마다 하소란다

오늘은 연극사 내일은 황금좌 막간아가씨

 

2절 가사 가운데 나오는 '라이트 속에 몸부림치는 꾀꼬리'라는 대목은 막간가수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표현이다. 또한, 1절에서는 신무대, 형제좌, 2절에서는 연극사, 황금좌 등이 등장하고 있어 이런저런 무대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막간가수의 처지를 알 수 있기도 하다. '막간아가씨'와 비슷하게 떠돌이 연예인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같은 박영호, 이재호 콤비가 만든 '오동동극단'을 들 수 있다.

 

' 오동동극단 '  광고

만주 천지 눈 천지 떠돌아 몇 해냐

나는야 열일곱 살 피에로 아가씨다

언제나 서울 무대 스타 꿈을 안고서

구름다리 가꾸야에 구름다리 가꾸야에 샛별을 본다

 

태평레코드에서 주최한 전국 콩쿨에서 당선된 백난아의 데뷔곡이기도 한 '오동동극단', '막간아가씨'의 속작이라 할 만큼 유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백난아의 목소리부터가 박향림과 아주 유사하게 화려한 기교를 구사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막간가수에서 곡예사 아가씨로 바뀌었지만, 언젠가는 화려하게 서울로 진출할 꿈을 가지고 만주를 떠돌고 있는 신세는 마찬가지로 고달프기만 하다.

 

지금은 지난 시대의 유물로서 코미디 소재로나 쓰일 정도로 유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유랑극단이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의 꿈과 눈물이 어려 있는 치열한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민중의 애환을 달래 주었던 것은 저 멀리에 있는 스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가까이에서 민중과 직접 부대끼며 활동했던 유랑극단의 이름 없는 예인들도 분명 기억 속에, 노래 속에 이처럼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