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6. 23:16ㆍ가요이야기
해같은 내 마음
라인강 남인수 팬클럽 고문 가요 연구가
<해 같은 내 마음>
작사 : 강초향
작곡 : 이봉룡
노래 : 남인수
1.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랴
푸른 희망을 가슴에 움켜 안고 떠나온 정든 고향을
내 다시 돌아갈 땐 열 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을 날려 보리라.
2. 세상을 원망하면서 울던 때도 있었건만
나는 새도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날아가는데
남아 일생을 어이타 연기처럼 헛되이 흘러보내랴
이 목숨 연기같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등불(이름)을 남겨 두리라.
3. 지구가 크다고 한들 내 맘보다 더 클소냐
내 나라를 위하고 내 동포를 위해서 가는 앞길에
그 어느 것이 눈앞을 가리우고 발목을 묶어둘소냐
뜨거운 젊은 피를 태양에 힘껏 뿌려서 한 백년 빛내보리라.
1.
오늘은 새삼스레 眞情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존재하며 맞대고 있는 모든 외연에서 과연 진정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가 드는군요. 아마 지난 시절의 전설로서만 풀어질 뿐 이 시대에 진정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합니다. 어쩌면 제각각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러나 모든 것은 동심원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기만의 원입니다. 그러나 그 바깥의 나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원을 쉽게 눈치채지 못합니다. 가끔 비상한 사람들의 배려로 그런 것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좀체 그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삼차원의 세계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사차원의 방향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차원에서만 생각이 머무는 것은 아닌지. 그게 인간의 한계가 아닌지.
觀念은 자신의 의지로 고집의 굴레 속에서, 종교는 스스로의 믿음으로 認識의 감옥 속에서, 과학은 明澄한 사고로 불가해의 신비 속에서, 利己는 영악한 계산으로 왜소한 인간 속에서 숨이 넘어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다 진정이 없습니다. 자신이 만든 스스로의 굴레와 감옥과 신비와 왜소 속에서 모래성 같은 몸짓을 하며 그게 진정인 줄 착각합니다. 오늘의 내 생각은 모두 다 오늘에서만 진정일 뿐 절대적인 의미의 진정은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을 잃어버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진정과 관련하여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인간을 함부로 조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주체입니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라는 조타수가 풀어내는 방향에 假睡 상태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왕건은 그 시대를 고민하는 장군의 시선으로서 새 세상의 문을 열었지요. 세종대왕은 그 시대의 어린 백성에 기초하여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 당대의 시간이 조율하는 상황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몫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지금의 시대를 만난다면 그들 진정의 몫은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래도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진정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이룰 수 없는 찬란한 업적을 쌓았지요. 그들은 시간의 파괴력을 견뎌내고 그들의 진정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인간을 개인으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의미를 잃은 이름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거미줄 같은 문명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진 세상을 살며 우리는 부속품으로서만 기능하도록 되었습니다. 내가 없으면 그 조직이 삐끗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작은 곤충 하나로 뻥 뚫린 구멍은 다른 줄의 장력이 대신하듯 문명의 메커니즘이 자가 진단하여 재빨리 흐름을 원래대로 만듭니다. 개인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인간의 진정이란 전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원시 시대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가슴에 심어져온 男性의(남녀를 떠나 性의 몫으로 세상을 감당하는) 위대한 힘이 그리워집니다. 눈앞의 자잘한 논리들 뒤에 숨은 可易의 인과를 굽어볼 수 있는 심오한 관념, 무서운 현실 질서에 패배될 줄 알면서도 자기 한 몸으로 부딪쳐 감당하려는 불굴의 의지, 계산에 빠진 시선을 벗어나 직관으로 불가시적인 세계를 보는 균형,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을 단순화하여 굵은 질서를 부여하는 통쾌… 아아, 우리는 그런 남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눈앞의 논리만을 우격다짐하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나약하게 순응하는, 세상을 단순 계산의 불구로 가두는, 자연의 질서를 잃어버리고 자기 기준으로 재편하는 아집을 絶對善으로 여기고 그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남성은 이 시대의 不德이 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집은 턱없이 크지 않습니까? 13평 아파트로도 충분한데 이리저리 이유를 붙여 34평 아파트에서 사는 건 아닌지. 비싼 洋酒와 아가씨로 하루 저녁의 흥을 구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돈 이천 원 어치 순대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실 수 있는데.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여러 곳에 재산을 굴리고 있지 않습니까? 가족이 그저 한세상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면 되는데.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남성의 위대함을 간과하고 진정이 없는, 편집된 가치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가치는 생존입니다. 진정은 사치일 뿐 모두다 생존을 위하여 허위로라도 한 세상 편하게 살면 장땡이라는 생각입니다.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렇게 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인간의 <풍습>과 <전설>과 <이야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밋밋한 그 얼굴들에서 무슨 풍습과 전설과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너도나도 똑 같이 준비된 차와, 집과, 外食과, 마누라와, 보석과… 일차원적인 표준으로 존재하는 이 시대의 평균 속에서, 지성이 사라지고 상식과 아집이 횡행하는 이 시대의 불화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외면하고 존재하는 현실만을 절대적 시간으로 여기고 오늘도 멋진 인생을 살며 폼을 짓는 이 비극적 오류 속에서는.
모두 다 왜소한 난쟁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이 값도 못하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의 푸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실패한 관념의 가당찮은 희극인지도.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진정을 닮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패배의 비웃음을 불안하게 날름거리더라도 진정이 아니면 용감하게 거부하였습니다. 많은 사나이들이 진정을 위해 꽃다운 자신들을 내던졌습니다. 그 시대는 인간의 풍습이 아름다웠고, 사람들에게 전설이 감동을 일으켰으며, 살맛 나는 인간의 이야기들이 하늘을 가르며 울려오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획일적인 인간의 냄새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70년대 중, 후반은 진정으로 삶을 살기 위해 방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라이브러리 학파(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죽치며 남들 다하는 취업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하게 역사와 사회와 철학 책을 보며 젊음을 구가하던 도서관 친구들 모임)에서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식당에서 점심을 배달하거나, 산업체 학교에서 저보다 나이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 때 어떤 해운 회사 회장님과 우연히 알게되어 자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럴 때면 그는 제게 노래를 시키곤 했습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를 퍽 좋아했지요.
- 낙화유수 뒷골목에 누구를 찾아∼
-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요 흘러가는 계집애∼
주로 술집 여인의 한많은 신세를 푸념하는 노래들이었습니다. 이런 노래들은 쉽게 불려지는 노래들이 아니지요. 아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하지만 꼭 하나 제 스스로 빠뜨리지 않고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회장님도 그 노래를 원했고.
-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결심하고 가는 길 가로막는 폭풍이 어이 없으리오∼
남인수의 ‘해 같은 마음’은 그 때 제 애창곡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참 드물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노래가 주는 비상한 열정에 빠져,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저만 알고 있다는 자부심도 곁들여 조금 오버 필링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 남아 일생을 어찌타 연기처럼 허무히 흘러보내랴
내 목숨 연기처럼 세상을 떠날지라도 등불(이름)을 남겨 두리라.
사나이로 태어나서 연기처럼 허무하게는 절대 살지 않으리라, 비록 지금은 힘들게 살고 있지만 내 진정을 다하여 젊음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리라, 그리하여 내 이름을 후대에 남기리라는 다짐을 하며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강렬한 욕망을 노래에 싣고 불렀습니다.
한데 어쩌면 이런 일이…
어느 날 회장님이 다짜고짜 저에게 선을 보라고 했습니다. 자기 딸과 말입니다. 무남독녀고 명문대를 나왔는데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회장님은 인생에 대한 저의 태도가 진지하며 균형 잡힌 지성이 맘에 들어 꼭 사위로 삼고싶다고 했습니다. 웬걸 얼토당토않은 칭찬이었지만 내심 절 사위로 삼아 자기 사업을 이어보고 싶은 게 본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열 대 안팎의 국내외선을 굴리면 상당한 재력가였습니다. 재주도 없는 절 좋게 보는 건 고맙지만 저는 적성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그런 회사 경험도 없어 자신 없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날 당장 제게 양복을 맞춰주고 친구 회사에 취직시켜주었습니다. 큰 회사의 당당한 과장 자리였지요. 그야말로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저는 생각해보겠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이틀 후 자기 집에서 선을 보게 했습니다. 사모님과 당사자인 따님에게 얼마나 이야기를 했는지 저를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극진히 대해주었습니다. 따님은 동양적 미덕을 장점으로 가진 듯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하는 제 말에 또렷이 대답했습니다. 전에 일부러 어머니와 함께 다방에서 뵌 적이 있고,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일은 벌써 제 생각과는 달리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저는 갑자기 신분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처음 나간 회사에서는 모두들 저를 보고 따뜻한 미소와 친절로 맞아주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은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학파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회피하지 말고 주어진 기회에 정당하게 도전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저는 그 때 인생의 기회를 생각했습니다. 세속적인 부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인생에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다, 구질구질하고 허덕이며 살 수는 없다, 내가 손만 뻗으면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에게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나는 충분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사업적 기질도 있다…
저는 그 때 또한 ‘해 같은 마음’을 되뇌며 진정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 연기처럼 허무히 보낼 수는 없다, 장부의 이름을 남기고 이 시대를 진정으로 살고 싶다, 돈에 혹해 손을 내밀면 벌써 내 진정을 다해 세상과 만나리라던 장한 각오는 허사가 된다, 이렇게 함부로 내 인생을 무너뜨릴 수 없다…
며칠 동안 갈등을 겪다 드디어 결심했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건 말없이 저를 따르던 그 따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겨울이었지요. 성동구 송정동에 있는 축대 위에서 눈발을 맞으며 저는 빛나는 지성의 한기를 느꼈고, 비록 힘들지만 미래의 제 정당한 삶을 향해 미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취인 주소만 있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따님에게.
∼세계의 先覺들은 저의 내부를 온통 차지해 버렸습니다. 彫像같은 인물들은 아버지처럼 말없이 절 훈련시켰고, 섬세한 그들의 언어는 어머니처럼 세련되지 못한 제 미숙한 정신을 감싸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가르쳐 준 세계 속에서 새로운 양식을 퍼담기에 바빴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제게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그것은 미개한 세상의 율법일 뿐입니다.
∼저는 아직 젊고 이제 겨우 출발의 자리에서 세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세상이 저에게 주어질 지 모르지만 저는 욕망에 충만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있습니다. 가엾은 황금으로 세상을 그저 누리기보다 그들이 가르쳐준 찬란한 정신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인간 정신의 실제적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타협이 아닌 진정으로 제 마음을 채우고 싶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제 앞을 찬란한 정신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며 저 혼자 세속의 유혹으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빨리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당신에게 실망을 안긴 저 자신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만 당신에게 더 큰 행운이 오기만을 빌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로 가득 찬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진정이었습니다. 후회도 없고. 그 당시의 제 결심은 지금도 어려울 때의 제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진정으로서 사나이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따님과 결혼했다면 지금의 저는 달콤한 가정에 안주한 홈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생각대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꽃잎을 날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서글픈 중년의 말미에서 허무에 젖는 신세지만.
이 노래에는 일견 익숙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놀라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 놀라움은 처음 다른 가요와는 조금 다른 멜로디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매형에게서 섬세한 작곡 이론을 체득한 이봉룡은 이 노래에서 장중하고 산문적인 멜로디를 토해내는군요. 그로서는 아주 색다른-, 사랑 타령과는 무관한 무슨 격정을 토로하는 기념가나 찬양가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섬세하고 참신한 가사와 겹쳐지면서 비로소 이 노래의 참다운 놀람이 드러납니다. 노랫말을 지은 강초향-남인수의 "달도 하나 해도 하나"를 지은 시인 김초향이 아닌가 합니다만-은 시인답게 사람들의 가슴을 긴장시키는 언어들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사나이, 결심, 폭풍, 희망, 꽃잎… 그런 언어들은 豫令으로 정신을 긴장시키지요. 그리고 사나이로서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결심을 태양에 뿌려서 백년을 빛내겠다는 격정적인 발언으로 머리를 때리며 動令을 발합니다. 우리는 잘 훈련된 장병처럼 노래의 명령에 따라 멜로디의 구석구석에서 긴장된 마임으로 制式을 완성하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늦추지 않고 흘러보내는 섬세한 디테일의 언어가 압권입니다.
남인수는 여기서도 완벽하고 노련한 작가주의를 뽐내는군요. 절규하는 듯한 진정으로 구절구절 심어놓는 음은 격정적입니다. 그러나 격정을 토하면 토할수록 음의 이면적 의미가 새롭게 반향되는 슬픔이 진정 속에서 우러납니다. 음을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하여 그 자체로서 그치게 하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반향시키는 것을 보면 우리 가요의 진정한 작가임을 다시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나이의 결심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제 불안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것을 느끼며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사나이의 결심 따위는 허망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나이 결심이라는 외면과 어쩌면 그것의 불안이라는 내면으로 짜여진 노련한 이중주의 성음은 인생의 불가해한 운명이라는 숨겨진 주제를 가진 노래로 다가오고, 그래서 그의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하게 합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무장한 그의 최고의 노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가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노래는 많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진정이라는 강력한 힘뿐만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쇼크까지 던져줍니다.
-사나이를 잊지마
-내 꼭 꽃잎을 날리리라
-목숨이 연기로 사라진다해도 이름을 남길 테야
-그래, 발목을 묶어도 젊은 피를 태양에 던져 백년을 빛나게 하겠어
상당히 도전적인 맹세를 내뱉으며 지금은 잃어버린 남성에 대해 빛나는 코드들을 쏘아댑니다.
현대를 사는 남성은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쥐약 먹은 병아리처럼, 거세된 수컷처럼 비실비실 합니다. 진정으로 현실을 감당하는 사나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 노래는 왜소해진 자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합니다. 비록 전쟁 이전 새로운 조국의 발전에 앞장서라는 시대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2.
이 노래는 후대의 조용필이‘사나이 결심’이란 제목으로 재취입했습니다.‘창밖의 여자’나‘촛불’등에서 토해내는 조용필의 당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과연 이 노래에서도 빛나는군요. 젊음이 간직한 상징으로 짐작하게 하여 쉴새없이 감성을 쪼아댑니다.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건 남인수의 노래를 모르고 말하는, 그야말로 조무래기 흉내에 다름 아닙니다.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선배들의 청춘의 고뇌가 벤 노래를 마치 자기들 당대의 고뇌처럼 위장하는 걸 보면 현실은 물론 과거까지 소롯이 자기들 것으로 빼앗으려는 욕심쟁이들로 보입니다. 과거를 없애고 현실만으로 모든 것을 해설하려는 자들의 무식함, 무감각함에 질렸습니다. 물론 후대의 가수들은 선배의 많은 노래들을 재취입하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노래는 몰라도 필히 이 노래만은 남인수의 노래로 남겨뒀더라면… 그러면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는, 현실추종자의 사치한 예찬도 없었을 텐데. 아무도 이 노래를 모르던 시절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자존심을 키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를 살고 그 장려한 과거를 되살리려는 제 노력을 참으로 허무하게 하는군요. 힘이 빠집니다.
처음에는 이 노래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제목도‘사나이 결심’이 아닐까 쯤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해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는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잘못 전해진 제목이 아닌가 싶어서.
왜 제목을 ‘사나이 결심’으로 하지 않고 ‘해 같은 마음’이라고 했을까요?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아마 해방 후의 사회적 혼란과 발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가요적 순응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나라와 동포를 위해 뜨거운 젊은 피를 태양에 뿌려 백년을 빛내리라는 자못 장엄한 결심을 그대로 나타낸다면 너무 직설적이고 선동적이어서 노래의 진실과 편안함이 생기지 않지요. 그래서 ‘해’라는 은유를 빌려온 것 같습니다.
노래의 주인도 몰랐습니다. 악보나 음악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느 늙은 색시에게서 소리로 배워 안 노래입니다. 일부 연결 어미나 단어가 틀리기도 하지만 3절까지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면 그 색시는 사나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위로의 노래로 부른 것은 아닌지. 후일 남인수의 노래임을 알고는 역시 황제의 품위가 베인 노래임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거대한 전설처럼, 혹은 공룡처럼 우뚝 선 우리 가요의 始原입니다. 굳게 다문 입술과 확고하고 진정이 담긴 소리는 감히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당당한 이상향을 나타냅니다. 그런 모습으로 노래의 중심을 잡으면 다른 모든 배경들은 자연히 자리를 잡을 수 있지요.
하나하나의 노래에 번득이는 自我를 심어서 아웃 테이크가 없는 가수-,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남긴 노래는 별처럼 가득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노래는 밤하늘을 가르는 건곤일척의 만루 홈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거세된 수컷처럼 진정이 없는 이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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