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 12:04ㆍ가요이야기
1930년대 후반, 대구에는
김학봉이란 명망높은 지식인이 계셨습니다.
서울에서 웬만한 문화인들이 대구를 찾아 내려오게 될 때
항상 김학봉 선생이 앞장 서서 영접을 하고
대구 근교의 산천경개를 유람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화가 나혜석 선생도 이렇게 다녀간 적이 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진자료를
남기고 있습니다.
가요황제 남인수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937년 초여름, 남인수 선생이 대구를 방문했던 길에
김학봉 선생의 안내를 받아서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를 함께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의 주인공은 김학봉 선생이 아니라
민족운동가 모씨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분은 자주 경찰서 고등계로 호출이 되어서
정기적으로 조사를 받을 만큼 요시찰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가황께서는 공연 일로 대구를 찾은 것인 지
아니면 다른 볼일로 대구를 다녀간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습니다.
최근 김학봉 선생의 누이동생 되시는
유명화가 김종복 선생으로부터
너무나 귀한 이 사진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김종복 선생은 대구가톨릭대학 회화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하신 분입니다.
한국현대회화사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분입니다.
1937년이면 1918년생인 남인수 선생의 나이
20세(만19세) 시절의 사진입니다.
이 시기에는 <거리의 순정> <눈물의 사막길> <물방아 사랑>
<북국의 외론 손> <아가씨 운명> <애수의 제물포> <유랑마차>
<인생극장> <임자 없는 남매> <잘 있거라> <청춘부대> <캠핑전선>
<항구의 하소> 등의 인기곡을 잇따라 발매했던
그야말로 뜨거운 세월이었지요.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사진은
상태도 깨끗하고, 또 매우 정겹고도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칠부 바지에 하얀 허리띠,
그리고 한 가운데로 가지런하게 탄 가르마
두 다리를 모으고 팔은 가볍게 뒷짐을 진 자세는
마치 철부지 소년처럼 사랑스럽고 친근감을 줍니다.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의 대웅전이라 할 수 있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전면의 불탑 앞에서
남인수 선생은 왼쪽으로 고개를 갸웃이 기울인 채
유난히 맑고 천진스런 표정의 얼굴과
아담스럽고 단정한 용모로 서 있습니다.
이 사진을 올리는 지금
저의 손은 흥분과 감격으로 떨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구하기 힘든
너무 너무 희귀한 자료이지만
제 혼자 소장하지 않고 이렇게 서둘러 올리는 것은
모두 <유정천리> 가요팬 여러분들과 더불어
이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은 충심 때문입니다.
음반, 가사지 등을 비롯하여
한국가요사와 관련된 모든 귀한 자료들은
혼자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정한 님들과 <더불어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모든 님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2월3일 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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